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문단 편집) == 여담 == 총선이 끝나고 약 1달 후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한 심판을 내리게 되는데, 노 대통령의 일부 발언이 위법한 것은 인정되지만 탄핵될 정도의 사유는 아니라고 판단하며 '''탄핵 기각''' 판결을 내렸다. 상세 내용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문서 참조.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는 '''[[무소속]] 당선자가 가장 적었던 [[선거]]'''였다. 명단이라곤 경상북도 문경시·예천군에서 당선된 [[신국환(정치인)|신국환]] 의원과 전남 [[나주시·화순군]] 선거구에서 당선된 [[최인기]] 의원 단 2명 뿐이었는데, 흥미롭게도 이때 무소속으로 당선된 두 의원은 [[서울대학교/학부/법과대학|서울대 법대]] 동문(신 의원이 3년 선배)에 고시(행시 4회) 동기라는 인연이 있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후 [[국민통합21]]의 [[정몽준]] 의원이 당선 뒤 당을 해체하면서 무소속 국회의원은 3명이 되었다. 참고로 경북 문경시·예천군의 무소속 당선자 신국환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과거 [[자유민주연합]]으로 지역에서 3번(총선 2회, 재보궐 1회) 출마했던 경력이 있었는데, 자유민주연합이 공중분해되면서 2005년 10월 창당된 [[국민중심당]] 공동대표가 되었다가 2007년 탈당, 중도개혁통합신당([[대통합민주신당]]의 전신)에 합류 후 정계를 은퇴했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다음 총선인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에서는 무려 25명의 무소속 당선자가 나와 민주화 이후 총선에서 무소속 당선자 최대를 기록했다. 열린우리당 안티 진영에선 이후 이 당시 탄핵 역풍의 영향으로 대거 당선된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들을 [[탄돌이]]라는 멸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전라남도]] 지역은 당시 열린우리당과 새천년민주당이 그야말로 진검승부를 벌인 선거판이었다. 결과는 7:5로 열린우리당 승. 사족으로, 목포에서는 열린우리당이 호남의 대표 정치인인 [[김대중]]과 [[동명이인]]인 [[김대중(교육감)|김대중]] 전 목포시의회 의장[* 훗날 [[전라남도교육청|전라남도교육감]]이 된다.]을 공천했으나, [[낙선]]했다.[* 당시 [[목포시(선거구)|목포]]의 현역 의원부터가 '''[[김홍일(1948)|DJ의 장남]]'''이었다. 다만 김홍일 의원은 17대에는 [[비례대표]]로 선회.] DJ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새천년민주당은 자신들의 보스격인 DJ에게 지지를 바랬지만, DJ는 중립을 지키며 사실상 새천년민주당을 외면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열린우리당 지지를 보이는 듯한 모션을 취했다. 대북송금특검 논란으로 참여정부와 사이가 어정쩡해 있던 상황에서 측근들을 외면하는 대신 화합을 도모한 셈이었다. 실제 사망 직전까지 했던 얘기도 절대 당 내에서 (영호남) 분열하지 말고 단합하라는 메시지였다.[* 다만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다시 합당하고 DJ가 서거한 이후 당 내 갈등이 곪아가다가 [[20대 총선]] 목전에 [[안철수]]와 호남계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면서 민주당계 정당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2016년)|국민의당]]으로 다시 둘로 갈라서게 된다. 물론 직계는 규모상 아무래도 더불어민주당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리고 이 때 국민의당 쪽으로 간 인사들은 [[바른미래당]]과의 합당, 그리고 분열 과정에서 [[민생당]]에 결집했고, 이들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21대 총선]]에서 '''원외 정당'''으로 전락하면서 철저하게 몰락한다. 이후 민생당에 남아 있던 호남계 인사들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으로 각자 흩어진다.] 이 선거 이후 13년 뒤 똑같이 탄핵 정국에서 치러진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때 총선에 출마한 후보들 중 무려 6명이 대통령 후보로 나서게 되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동대문구 을]]에서 당선), [[바른정당]] [[유승민]](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당선, 1년 후 [[동구 을]] 당선자였던 [[박창달]]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년만에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그 자리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비례대표 의원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변신), [[정의당]] [[심상정]](17대 총선 당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당선), [[늘푸른한국당]] [[이재오]](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은평구 을]]에서 당선), [[국민대통합당]] [[장성민]](17대 총선 당시 새천년민주당, [[금천구(선거구)|금천구]]에서 낙선), [[한국국민당(2015년)|한국국민당]] [[이경희]](17대 총선 당시 무소속, [[동대문구 갑]]에서 낙선).][* 특히 19대 대선 주요 후보들 가운데에는 [[문재인]], [[안철수]] 2명만 2010년대 들어서야 정계에 진출하게 되어 이 문서에 해당하지 않는다.] 물론 한국에선 국회의원이나 시장 등 다양한 정계 경력을 쌓다 대통령 후보에 출마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사실 엄청 특이한 상황까진 아니다. [youtube(81az6WwaIRc)] [[윤민석]]이 작곡한 투표부대송. 당시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제작되었으며, 플래시는 바른손이 제작했다. 가사에 당시의 [[인터넷 유행어]]였던 [[아햏햏]] 코드도 들어가 있다.[* '주침야활 '''햏자'''는 도움 청하여', '모조리 '''방법하자''''] 주5일 근무제도가 전면 도입됨에 따라 전국단위 선거를 [[목요일]]이 아닌 [[수요일]]에 치르도록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이 선거가 목요일에 치러진 마지막 전국단위 선거가 되었다. 이 선거부터 달라진 점은 군단위 도시들은 단독 선거구를 구성하지 않고 인근 지역들과 합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여군은 [[제16대 국회]]까지는 단독 선거구였으나, [[제17대 국회]]부터는 가까운 여러 지역들과 합구하고 있고, 다른 지역들의 군단위 지역들도 다 마찬가지다. 다만 당진군만은 [[군(행정구역)/대한민국|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인근 지역과 합구를 하지 않고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차기 총선]] 때에도 단독 선거구를 유지하다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차차기 총선]]을 앞두고 [[시(행정구역)/대한민국|시]]로 승격하면서 선거구명도 '당진군'에서 '당진시'로 변경되었고, 이리하여 [[제19대 국회]]부터 [[대도시]] 내에 있는 지역구들[* [[달성군(선거구)|달성군]], [[울주군(선거구)|울주군]], [[기장군(선거구)|기장군]]. 다만 기장군도 인구가 적었던 옛날에는 인근의 [[해운대구]]와 같은 선거구였으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부터는 인구 증가로 독립하여 단독 선거구 체제로 가고 있다.]을 제외하고 도 내의 군단위 단독 선거구들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